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한국 저예산 영화의 전설,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류승완 감독의 전설적인 데뷔작 영화 감상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한국 저예산 영화의 전설,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2000년에 개봉한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류승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그의 동생 류승범의 스크린 데뷔작이기도 한 작품입니다. 제작비 6,500만 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전국 4개 상영관에서 시작해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며 전국 20개 상영관으로 확대 개봉되어 약 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지금까지도 전설로 회자되는 이 작품은 거칠고 날것 같은 에너지로 관객들을 사로잡았으며, 이후 류승완 감독이 한국 액션 영화의 거장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DIE BAD (2000)

목차

  1. 줄거리 -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2. 등장인물 및 출연 배우
  3. 평단의 반응과 수상 내역
  4. 감상 포인트
  5. 영화의 장단점
  6. 개인적인 느낌과 총평

줄거리 -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네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입니다. 각 에피소드는 독립적이면서도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시간 순서대로 전개됩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 '패싸움'은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석환(류승완 분)과 성빈(박성빈 분)이 당구장에서 예술고등학교 학생들과 마주치면서 시작됩니다. 공돌이라는 조롱에 열등감을 느낀 석환과 친구들은 예고생들과 패싸움을 벌이게 되고, 싸움을 말리던 성빈이 실수로 예고생 현수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은 이후 모든 에피소드의 출발점이 됩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 '악몽'에서는 살인죄를 혼자 뒤집어쓰고 7년간 소년원과 감옥을 전전한 성빈이 출소합니다. 새 출발을 꿈꾸지만 가족과 사회의 냉대만 돌아오고, 매일 밤 자신이 죽인 현수의 악령이 찾아와 괴롭힙니다. 우연히 폭력 조직의 중간 보스 태훈을 구해주게 된 성빈은 주먹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 '현대인'은 강력계 형사가 된 석환과 폭력 조직의 중간 보스 태훈이 지하 주차장에서 마주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두 사람은 목숨을 걸고 치열한 격투를 벌이는데, 이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액션 시퀀스로 평가받습니다. 형사와 건달, 선과 악의 경계에 선 두 남자의 대결이 숨 막히게 펼쳐집니다.

네 번째 에피소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석환의 동생 상환(류승범 분)이 야간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형 몰래 성빈의 수하가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폭력배 조직 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상환은 자신이 희생양이 될 줄도 모른 채 전쟁터로 달려갑니다. 흑백 화면으로 촬영된 이 마지막 에피소드는 눈 내리는 거리에서 상환이 쓰러지는 장면으로 비극적으로 끝을 맺습니다.

등장인물 및 출연 배우

석환 역 - 류승완
감독이자 배우로 직접 출연한 류승완은 공고를 졸업하고 강력계 형사가 되는 석환 역을 맡았습니다. 열등감과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청년의 모습을 거칠면서도 진정성 있게 연기했습니다. 당시 류승완은 감독으로서의 역량뿐만 아니라 배우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주었습니다.

상환 역 - 류승범
영화계에 처음 발을 디딘 류승범은 마지막 에피소드의 주인공 상환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형이 "배우를 찾다 찾다 집에 돌아와 보니 역할에 딱 맞는 생 양아치가 누워 있었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류승범은 제38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남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화려하게 시작했습니다.

성빈 역 - 박성빈
친구를 위해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7년간 복역한 후 폭력배로 살아가는 성빈 역을 맡았습니다. 박성빈은 출소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청년의 고뇌를 설득력 있게 표현했습니다.

태훈 역 - 배중식
폭력 조직의 중간 보스 역할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현대인' 에피소드에서 석환과 벌이는 격투 장면은 영화의 백미로 꼽힙니다.

이 외에도 정재영, 임원희, 안길강 등 당시 신예 배우들이 출연해 생생한 에너지를 불어넣었습니다. 특히 정정훈 촬영감독이 카센터 직원으로, 장건재 감독이 상환의 친구로 카메오 출연한 것도 흥미로운 포인트입니다.

평단의 반응과 수상 내역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특히 단편 '현대인'은 1999년 제25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도전 부문 최우수작품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수상했습니다. 이는 류승완 감독이 단편을 묶어 장편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장편 영화로 완성된 후에는 2000년 제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PSB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류승범은 2001년 제38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남우상을, 류승완 감독은 제21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영화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열혈 시네필의 청춘에 관한 맹렬한 기록"이자 "스스로의 성장에 관한 환희에 찬 인정투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현대인' 에피소드의 격투 장면은 "육체의 충돌이 너무나 진지해서 액션 장면이라기보다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일 정도"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제작비 6,500만 원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같은 시기 4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비천무'보다 뛰어난 작품성으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한국 저예산 영화계에서 전설로 남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2019년과 2024년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되어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에게도 소개되었습니다.

감상 포인트

1. 진화하는 영화 문법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가장 독특한 점은 네 개의 에피소드가 차례로 진화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패싸움'은 거칠고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를, 두 번째 '악몽'은 호러와 액션의 실험적인 결합을, 세 번째 '현대인'은 완성도 높은 액션 연출을, 마지막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흑백 영상미와 비장한 서사를 보여줍니다. 한 편의 영화 안에서 감독의 성장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2. 리얼한 액션 연출
류승완 감독은 독학으로 영화를 배운 만큼 성룡이나 버스터 키튼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육체적인 액션을 선보입니다. 특히 '현대인' 에피소드의 지하 주차장 격투 장면은 스턴트나 와이어 액션 없이 두 배우가 실제로 몸을 부딪치며 촬영되어 극도의 현실감을 자아냅니다. 관객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거리의 캐릭터들
고삐리, 전과자, 형사, 건달, 양아치 등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은 모두 사회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입니다. 이들의 충돌과 갈등은 영화의 동력이 되며, 각자의 논리와 애환을 가진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류승완 감독은 이들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 구분하지 않고, 각자의 생존 방식을 가진 현대인으로 묘사합니다.

4. 눈 내리는 마지막 장면
흑백으로 촬영된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는 우연히 촬영 당일 눈이 온 것인데, 감독은 이를 영화에 그대로 사용했고 결과적으로 비극적인 엔딩에 시적인 아름다움을 더했습니다. 류승범이 연기한 상환이 눈 속에서 쓰러지는 장면은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으로 평가받습니다.

영화의 장단점

장점

첫째, 초저예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제작비 6,500만 원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탄탄한 스토리와 인상적인 영상미를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의 흑백 촬영은 낮은 예산을 예술적 선택으로 승화시킨 좋은 예입니다.

둘째, 류승범의 발굴은 이 영화의 큰 성과입니다. 이후 '주먹이 운다', '베를린', '베테랑' 등 수많은 작품에서 명연기를 선보이며 한국 영화계의 대표 배우로 성장한 류승범의 시작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의미 있습니다.

셋째, 옴니버스 구조가 효과적으로 작동합니다. 네 개의 에피소드가 독립적이면서도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어 있어, 관객은 지루함 없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다른 톤과 스타일을 보여주면서도 전체적인 통일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넷째, 진정성 있는 연출이 돋보입니다. 류승완 감독은 제도권 밖에서 독학으로 영화를 배운 만큼 기존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연출을 선보입니다. 스스로를 '표절의 왕'이라 부를 정도로 다양한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결과물은 오히려 독창적이고 개성 넘칩니다.

단점

첫째, 초저예산 제작의 한계가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일부 장면에서는 마이크 봉이 화면에 잡히는 등의 기술적 결함이 있으며, 촬영과 편집의 조악함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거칠음이 오히려 영화의 날것 같은 매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둘째, 과도한 비장미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영화 전체에 흐르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비극적인 운명이 일부 관객에게는 지나치게 우울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셋째, 폭력 묘사가 상당히 직접적입니다. 리얼한 액션을 추구하다 보니 일부 장면은 보는 이에 따라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넷째, 옴니버스 구조 특성상 일부 에피소드는 완성도에서 편차가 있습니다. '악몽' 에피소드는 호러와 액션을 섞으려 했지만 다소 어색한 결과를 낳았으며, '패싸움'은 지나치게 거칠고 산만한 느낌을 줍니다.

개인적인 느낌과 총평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보는 것은 단순히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것 이상의 경험입니다. 이 영화는 영화를 사랑하는 한 청년이 모든 것을 걸고 만든 작품이며, 그 열정과 진정성이 화면 구석구석에서 느껴집니다. 제작비 6,500만 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화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현대인' 에피소드의 격투 장면입니다. 지하 주차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두 남자가 벌이는 육체적 충돌은 그 어떤 대작 액션 영화보다 치열하고 진실했습니다. 형사와 건달이라는 서로 다른 위치에 있지만, 결국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싸움은 단순한 폭력을 넘어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지막 에피소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흑백 화면과 눈 내리는 장면도 잊을 수 없습니다. 류승범이 연기한 상환이 조직의 말단 건달로 살다가 결국 희생양이 되어 쓰러지는 모습은 가슴 아픈 동시에 아름답기까지 했습니다. 우연히 눈이 온 것을 영화에 담았다는 뒷이야기를 알고 나면, 그 장면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때로는 계획하지 않은 우연이 가장 완벽한 순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물론 영화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기술적 결함이 눈에 띄고, 일부 장면은 조악하며, 전체적인 완성도에서 편차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점들조차 영화의 진정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류승완 감독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그 결과 돈으로 살 수 없는 에너지와 열정이 가득한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류승완과 류승범 형제의 출발점이자, 한국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류승완이 이후 '짝패', '부당거래', '베테랑', '모가디슈' 등의 명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화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었습니다.

만약 한국 액션 영화의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류승완 감독의 팬이라면 이 영화는 반드시 봐야 할 작품입니다. 거칠고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 치열한 액션,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엔딩까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2500자를 훌쩍 넘기는 이 감상문을 쓰면서도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남았지만, 결론은 하나입니다. 이 영화는 불완전하지만 완벽하고, 거칠지만 아름다운, 그래서 더욱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영화를 본 후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습니다. 석환, 성빈, 상환 등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세상에서 밀려난 주변인들이었지만, 그들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려 했습니다. 그들의 선택이 옳았는지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쳤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치열함이 바로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평점: ★★★★☆ (5점 만점에 4점)

초저예산 독립영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열정과 진정성, 인상적인 액션 연출, 그리고 류승완-류승범 형제의 시작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기술적 완성도의 아쉬움과 과도한 비장미를 감안하더라도, 이 영화가 한국 영화사에 남긴 족적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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